2008년 08월 07일
[로드앤] 2차 시승기 수중전 - 스피라 터보
원문보기



수중전

2차 시승이 예정된 토요일 오후.. 출발했던 대전과 마찬가지로 문막도 비가 내린다. 지난 번 시승처럼 신나게 잡아 돌리며 횡G를 만끽하길 기대하고 왔건만..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비를 보며 살짝 기운이 빠진다. 부스에서 어울림 모터스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써킷을 쭈욱 돌아보았다. 군데군데 흙탕물이 튀고 물웅덩이가 생긴 코스를 보니 운전하며 느낄 재미보다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빗길이란 한계가 낮은만큼 후륜 슬라이드에 대처하고 드리프트를 연습하기에는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이제껏 UHP를 낀 후륜구동이 이런 노면에서 얼마나 신경질적인지 여러차례 경험한 적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행사를 제대로 치룰 수 있을까..'

이윽고 시승 시작.. 원망스럽게도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출발선 상에 대기하고 있는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스피라 두대.. 지난 시승때 은색의 S(수퍼차져)를 주력으로 시승했기에, 이번엔 빨간색의 터보차져 모델에 냉큼 올랐다. 데모 주행을 맡아주신 분은 김범훈 선수. 동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착석을 마치고 스타트. 시작은 부드럽게, 하지만 스풀업 후 이어지는 살벌한 G포스. 자칫 잊혀질 수도 있을, 한달이나 지난 후이지만 순간적으로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이렇게 풀 가속으로 시작하는 편이 차라리 출력에 적응하기 편하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곧바로 첫번째 좌코너로 맹렬히 대쉬. 마른 노면보다 페이스를 낮추긴 했지만 예상보다 진입이 빨라 나도 모르는 사이 지지하는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빠르다.. 비가 온다고해서 내가 이 차의 실력을 너무 낮게 잡은 것인가..?'

김범훈 선수는 살짝 날렸던 리어를 파셜 엑셀링과 약간의 카운터로 붙잡고는 다시 돌진한다. 꼬불꼬불한 연속 헤어핀을 지나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하염없이 옆으로 옆으로 흐르고.. 트레일 브레이킹과 함께 리어는 선회반경 바깥으로 빠지지만 프론트는 어김없이 클리핑 포인트를 향한다. 반경이 큰 마지막 좌코너는 탈출 직선로가 보이기 전부터 이미 드리프트 상태다. 30도가 넘는 큰 드리프트 앵글이라 코너링 스피드 자체는 무던했지만 자세 회복에서의 말끔한 거동에 내 입에서는 '으음.. 역시..' 하며 탄성이 흘러나온다.
젖은 노면이라 그 정도의 주행 속도가 바깥에선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른 노면에서 제대로 경험한 나로서도 차량 안에서 느낀 젖은 노면에서의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드디어 스피라 터보의 콕핏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번의 S보다 작은 직경의 스티어링휠이라 계기류의 확인은 불편한 대신 더 신속히 조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쉬프트 케이블을 교체했는지 기어별로 들어가는 느낌이 조금 나아졌고 클러치 페달이 좀 더 조작하기 편하다. 그 외에 특별히 S와 다른 점은 없다.. 낯설지 않아 오히려 반갑다.

'자~ 오늘은 수중전이다..!' 터빈 반응을 맛보는 수준으로 살짝 가속해서 첫 코너로 들어갔다. 가벼운 엑셀 오프로 턴 인 하고서 선회 중에 엑셀을 툭툭 건드려본다. 약한 오버스티어로 뒤가 날아갈 듯 하면서도 카운터와 엑셀링에 의해 금방 추진력을 되찾는다. 다음 우측 헤어핀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후두둑~하며 빗물이 유리창을 가리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었다. 앞쪽 하중을 제대로 실어주지 못한 상황에서 곧이어 엑셀을 밟았더니 앞쪽 선회 라인이 부풀면서 가차없이 푸싱언더가 나타난다. 이래서 미드쉽이다.. 언더나 오버로의 전환이 워낙 빠르다. 하지만 엑셀을 살짝 떼었다 밟는 정도로 라인의 수정이 충분히 가능한 수준. 고출력 후륜이라 빗길 안정성을 내심 걱정했었는데 조금씩 안도가 되었다. 잠깐씩 풀 부스트를 걸어도 후륜이 헛돌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타코미터는 여전히 고장인 상태, 최대 부스트를 얼마나 쓰는지 알 수 없으나 토크는 실용영역을 포함해서 유연하게 걸쳐 있는 듯하다. NA의 필링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터보는 분명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 과급에 대한 의존도가 클수록 중후반 회전수에 몰린 급격한 토크 특성을 보이기 쉽기 때문에 이런 미니 써킷이나 와인딩에서는 오히려 고출력이 짐이 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몰아보니 약간의 랙이 있긴 해도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고압 터보 세팅에서 저회전수 영역일수록 약간은 맹~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나름 구동력이 끈끈하고 부스트가 걸리기 전, 후의 경계에서의 위화감도 다듬어져 있다.

두바퀴.. 세바퀴.. 네바퀴..
미드쉽으로는 본인 차량으로조차 빗길에 한계를 넘나들면서 주행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아무래도 어느 정도 이상 페이스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고가의 시승차량을 가지고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 이정도 돌아보는 수준으로 끝내야겠다..' 생각할 즈음.. 조수석에 앉은 김선수가 계속 더 돌아봐도 된다는 무전을 전한다. 내가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데다, 정체로 다른 참가자들이 예정 시간에 늦어진 이유도 있을테지만 아마도 로드앤의 특별 배려 덕분이었을 듯.

써킷에서 일급 인스트럭터에게 1:1 드리프트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한가. 거동 특성을 파악할 겸..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체의 반응은 무척 직접적인 편이고 시선이 가는대로 카운터에 응답 해주는 점 덕분에 리어를 살짝 흘리는 느낌을 내는 정도로는 그리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반경이 타이트한 헤어핀에서는 진입시 약간 일찍 잠기는 후륜 때문에 궁둥이가 바깥으로 쉽게 빠져버린다. 이런 길에선 브레이킹을 얼마나 남긴채로 스티어링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고민이 된다. 일단 뒤가 날라가는 상태가 시작되면 엑셀이 과해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된다. 과하면 하중을 뒤로 실어도 타이어가 헛돌아 결국 스핀하게 되고, 모자라면 금새 그립을 잡아버리면서 도리어 언더가 난다. 김범훈 선수의 어드바이스... 스티어링이 과격해서 초기에 너무 뒤가 날아간다며 부드럽게 조작하라고 했다. 지난 시승에서 그립이 충분한 상황을 기억해서 그랬는지, 내가 생각해도 젖은 노면에서 스티어링을 너무 급하게 꺾는 거 같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헤어핀에 도전.. 또 도전..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겨우겨우 슬라이드를 출구까지 유지하며 헤어핀을 클리어 했다. 김선수가 저번보다 많이 나아졌다며 칭찬해준다. 그 정도나마 짧은 시승 시간에 할 수 있었던 건 스피라가 운전자의 의도를 잘 반영하는 차이기 때문이리라.


소감

6기통이긴 하나 그리 배기량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베이스 엔진.. 2.7 델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워터재킷이 얇고 알루미늄 블럭이라 안된다 하던 500마력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투스카니 엘리사 트윈터보로 300km/h에 도전하는 업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요즘의 터보차져는 충분히 고성능이고, 그동안 국내 세팅 기술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2008 스피라가 왜 PS2에서와 같이 대배기량 엔진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하는 것은 어울림 모터스의 결정이겠지만, 델타 엔진으로 경험을 쌓아 국내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와 고집을 우선 높이 사고 싶다. 어짜피 같은 엔진을 쓰는 투스카니와 출력 비교는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차량의 특성과 얼마나 잘 매칭시키느냐가 될 것이다.

서스펜션은 롤을 상당히 억제하고 있음에도 무작정 단단한 세팅이 아니라서 노면의 단차나 범프를 부드럽게 받아들인다. 전, 후 각각 225mm, 275mm의 초광폭 타이어임에도 물웅덩이를 지날 때 차체가 허둥대는 느낌이 별로 없다. 타이어에 의존해서 안정성을 도모할 경우, 노면의 뮤가 낮을수록 언더나 오버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직진성이 높은 차량은 언더가 더욱 속을 썩이고, 후륜 구동은 지나치게 뒤가 예민해져서 안정성을 잃기도 한다. 스피라 터보는 기본적인 중량 밸런스에서 발현되는 안정성이 높아 미끄러워도 그리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미드쉽으로는 각도가 큰 드리프트는 무척 어렵다. 특히 무게 중심이 높고 리어 측의 무게 비율이 높을수록 슬라이드 앵글은 상당히 제한되고 리어 타이어가 아무리 좋다한들 그립을 잃는 순간 차체는 거꾸로 진행하며 완전히 컨트롤 불능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차량으로는 뒤를 날려 코너를 돌아나온다 하더라도 속력이 너무 떨어져버리므로 스핀 회복 수준 밖에는 안된다.
그렇지만 스피라는 이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물론 중량물이 차체 중심에 몰려있어 스핀 속도 자체는 빠르지만 그 회복도 빠르다. 회전이 일어나도 철저하게 운전석 바로 그 중심이기 때문에 차체의 스핀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스피라가 허용하는 슬라이드 앵글의 범위는 미드쉽 후륜구동임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준이다.

문제는 브레이크...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ABS가 동작하지 않는 상황에서 뒤쪽 제동이 강하게 프로포셔닝 되어있다. 이런 특성은 감속하며 뒤를 날리기에 좋기 때문에 프로급의 테크닉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유용하겠지만, 제동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점에서 일반인 대상으로는 분명히 무리수가 있는 세팅이다. 실제로 다른 시승자의 주행 도중에 감속하다가 피쉬 테일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코너 진입시 드리프트를 쉽게 하긴 하지만, 절대적인 한계치를 낮추게 되므로 경험이 충분치 않은 고객이라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더우기 다양한 노면 조건을 갖춘 공도에서 고출력을 소화해야 하는 차량의 하체는 매끄러운 노면만을 상정해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탑승자의 피로에 영향을 주는 승차감도 중요하지만 안정성을 잃지 않도록 서스펜션 및 브레이크의 반응이 점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ABS에 의존하기 이전에 기계적인 제동 밸런스를 조정하고 리어 측의 스트로크를 살짝 더 늘리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차량이 최종 출시 버젼이 아닌데다, 데모 주행을 위한 세팅이란 점을 고려하면 주행성에서 크게 흠잡을 만한 구석은 없었다. 다만, 시작차라고 내놓았던 첫번째 시승에서 높은 포텐셜로 좋은 인상을 남겼었기에 한달이나 지나면서 더 가다듬어졌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역시 그대로인 점이 아쉽다.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켜보면서 스피라에게 거는 기대는 그보다 크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차체이면서도 하중이동에 의해 액티브하게 앞 또는 뒤를 미끄러뜨릴 수 있는 조종성.. 미드쉽 스포츠카로써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는 점에서 운전자로 하여금 필요이상으로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세밀한 코너링이 가능하도록 세팅에 더 노력을 기울렸으면 한다. 추후 완공되는 공장에서 생산시 완성도를 높인다고 하니 이러한 점들이 변경될 수 있을 것이다.

초강력 브레이크, 저 중심의 수평대향엔진을 미드쉽으로 탑재한 박스터와 케이먼.. 초경량 차체와 메인터넌스가 쉬운 토요타제 엔진에 수퍼차져까지 장비한 엘리스와 엑시지.. 이런 내노라하는 차들이 이미 필드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스피라가 진정한 실력으로 인정받는 차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온라인카쇼 로드앤 www.roadn.com by mr2boy

by 로드앤 | 2008/08/07 16:05 | 로드앤 리뷰 | 트랙백 | 덧글(0)
ⓒ온라인카쇼 로드앤 (www.roadn.com)
로드앤에서 생산한 컨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 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